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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 균, 쇠

by 시네틱 2020. 7. 16.

1. 유럽 인종은 유라시아 서쪽 귀퉁이에 몰려살던 인종이다. 그들이 현재처럼 넓게 포진되어 주류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근현대사에서 타 대륙을 식민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인이 없던 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 대륙에 유럽 인종의 씨를 뿌려 번성했다.

우리는 타 국가의 주권을 빼앗는 식민지배가 아닌 공동체로서 함께 발전하고, 우리와 함께할 집단과 융합하여 번영하자. (P 157 감상문)

2. P164) 인간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많은 요소들을 고려한다.(농경은 어떻게 지배적 생활 양식이 되었나?, 농경 샐활은 '발명'된 것이 아니다. 이분법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은 우선 배고픔을 달래고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거리를 찾는다. 그러나 또한 툭정한 먹거리(단백질이 풍부한 음식, 지방, 소금, 달콤한 과일, 그냥 맛이 좋은 음식 들)를 먹고 싶어 하기도 한거. 다른 요소들이 동등하다면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확실하게 가장 많은 보상을 얻을 수 맀는 방법으로 먹거리를 찾은다. 그렇게 열량, 단백질, 기타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먹거리의 양을 극대화시키랴고 한다. ...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를 통틀어 농경민은 언제나 수렵 채집민들을 원시적이라는 이유로 경멸했고 수렵 채집인들은 농경민들을 무지하다면서 경멸했으며 목축민들은 둘 다 경멸했다. 개인이 먹거리를 어떻게 얻을 것인지를 선택하려고 할 때마다 그 같은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3. 페이지 170 이상해 내가 주인이 종합해보면 비옥한초승달지대에서 식량생산이 어째서 비씨 18,500 년이나 DC 20008 1500년이 아니라 bc8 1500년경에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앞에 두 시기에는 아직 수렵채집 쪽이 초기단계의 식량생산 보다 훨씬 더 보성이 컸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는 야생 포유류는 풍부했던 것에 비해 야생 공유는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공유를 채집 가공 저장 하는데 필요한 발명품들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단위면적당 더 많은 열량을 수학 하는 일에 중점을 둘만큼 인구 밀도가 높지도 않았고 때문이다 식량생산으로에 전화 내 작용했던 마지막네 번째 요인은 수렵채집민과 식량 생산자들의 지리적 영역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ㅡ심양 생산자들은 인구가 훨씬 좀 있기 때문에 굳이 기술 병원균 직업 군인 등등 식량생산과 관련된 그 밖의 이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순전히 숫자만 가지고도 수렵채집민들을 모라 내거나 물산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수렵채집민 밖에 없었던 지역에서도 식량생산을 도입한 수렵채집민 집단들은 곳 그렇지 못한 집단들 보다 인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식량생산에 적합한 각 지역에서 사는 수렵채집민들은 대부분 두 가지 중 한 가지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세 식량 생산자들의 이쪽은 하든지 스스로 식량생산을 받아들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수렵채집민에 인구가 많아졌고 나 지리적조건 때문에 측량 생산자들의 이주가 늦어진 곳에서는 그 지역에 수렵채집민들이 선사시대의 농경을 도입할 만한 시간이 충분히 했으므로 농협 미니 되어 생존할 수 있었다 미국 서남부 지중해 서부 유럽의 대서양 연안에 그리고 일본의 일부지역 등이 그러한 경우 였을 것이다그러나 인도네시아 10대 동남아시아 적도이 남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 그리고 어쩌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도 수렵채집민들은 선사시대의 농민들의 위에 교체되고 말았으며 근데 와서는 미국 서부의 대부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슷한 교체 현상이 있었다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렵채집민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유난히 강력해서 측량 생산자들이 이주하거나 각 지역의 적합한 식량생산 기술이 밖으로 학생들과 매우 어려웠던 지역들 뿐이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예를 찾는다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사막 때문에 애리조나의 아메리카원주민 농민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캘리포니아의 아메리카원주민 수렵채집민 인근 반투족 농경 민들레 적도 농작물에 부적합한 지중해성 기후 대속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희망봉 일대의 코이산족 수렵채집민 여러개의 때문에 인도네시아와 유빈이의 식량생산 자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저녁에 수렵채집민 이거 한 예이다 더 나아가서 20세기까지도 수렵채집민으로 남아있었던 몇 명 민족들은 식량생산의 부적합한 지역 특히 사막이나 북극지방 등의 국한되어 살았던 덕분에 식량생산 자들에 의해 교체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20세기가 다 지나기 전에 문명의 유혹에 굴복하거나 관료는 선교사들의 압력에 못 이겨 정책 하거나 아니면 병원균 때문에 죽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문명은 발전한 것인가 현대 사람들의 의식과 도덕성은 발전한 것인가 과거 인간은 바른 생활 양식을 가진 부족과 전쟁을 하고 약탈을 했다 또한 전쟁과 약탈이 아닌 교류와 협력을 한 사회도 있을 것이다 전쟁을 하면 고위 계급들이 자멸한다 자멸하게 된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국가 간 전쟁을 야만시하고 계급간 폭력적 투쟁을 야만시 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성이 발전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본 고위층 계급을 위험에 빠트리다 않기 위한 속임수인가

4. 페이지 175. 진화의 자연선택. 초기 식물의 무의식적 작물화.
먼저 식물의 관점에서 장 문화를 살펴 보는 것으로 시작하자 식물 쪽에서 본다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식물을 작물화 했던 수천종의 동물 가운데 한종일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종이 그랬듯이 식물도 자손이 잘 자라서 부모의 유전자를 전할 수 있는 지역의 자손들을 퍼뜨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 동물들은 걷거나 날아서 터질 수 있지만 식물은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어떻게든 다른 매개를 통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일부 식물들은 바람에 날리고 나물에 뜨도록 적응한 씨앗들을 갖게 되었다 또 많은 식물들은 씨앗을 맛 좋은 과육으로 감사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종이 그랬듯이 식물도 자손이 잘 자라서 부모의 유전자를 전할 수 있는 지역의 자손들을 퍼뜨려야 한다 그런데 어린 동물들은 걷거나 날아서 터질 수 있지만 식물은 그렇게 하지 못하므로 어떻게든 다른 매개를 통해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일부 식물들은 바람에 날리고 나물에 뜨도록 적응한 씨앗들을 갖게 되었다 또 많은 식물들은 씨앗을 맛 좋은 과육으로 감싸 과육의 색깔이나 냄새로써 잘 익었다는 것을 널리 알려 동물들이 자기 씨앗을 운반하도록 만드는 계략을 쓴다
*종별 DNA가 서로의 자손을 퍼뜨리려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DNA라는 놈 자체가 다양성을 무한히 확보하면서 영속한다. 각자가 다른 것 같지만 모두 DNA 유기체이다. 모두 하나의 DNA 유기체로부터 분화해왔다. 짐짓 다른채 하지만 모두 하나의 DNA유기체가 계획한 설계대로 무한히 바뀌어 왔다. 변신했다. 어떠한 극한 환경이 다가오더라도 원시 DNA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려면 무한히 많은 종이 무한히 많은 특성을 갖도록 분화해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한다.*
식물의 종자가 뱃속에서 도서 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배설물 속에서 바란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비위가 약하지 않은 용감한 독자라면 실험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많은 야생 생물의 씨앗들은 동물의 배속을 통과해야만 바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산 바꿔 식물의 한종은 하이에나를 닮은 흑돼지에게 먹히는 일에 기막히게 적용하여 대부분 흑돼지의 배설 장소에서 잘한다 식물이 동물을 유인하는 예로서 야생딸기의 경우를 보자 딸기 치과 여물지 않아서 아직 땅에 심어질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종자를 둘러싸고 있는 과육은 파랗고 쉬고 단단하다 그러다가 씨가 다 익으면 과육도 빨갛고 달고 연해진다 이렇게 딸기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결국 개똥지빠귀 같은 새들이 그 딸기를 따먹고 날아가서 종자를 뱉어 내거나 배설하도록 유인하는 신호인 것이다 물론 딸기가 자기 종자를 퍼뜨릴 준비가 되었을 때만 세대를 위한 하겠다는 의식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개똥지빠귀에게도 딸기를 장무로 하겠다는 의도는 없다 딸기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 했던 것이다 설익은 딸기가 파랗고 실수로 종자가 있기도 전에 새들이 딸기를 먹어서 종자를 망쳐버리는 일도 적어졌고 잘 익은 딸기가 빨갛고 달수록 다 염은 종자를 멀리 퍼뜨려 주는 새해 숫자도 많아졌다 그 밖에도 무수한 식물의 열매가 특정 동물에게 먹혀 퍼뜨려지는 일에 적응했다 딸기가 새에게 적응한 것처럼 도토리는 다람쥐의 적응했고 망고는 박쥐에, 그리고 일부 사초류는 개미의 적응했다 조선 식물의 유전자를 소비자에게 더 유용하도록 개량하는이라는 점에서 식물의 작물화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일부 충족시킨다그러나 이러한 진화과정을 계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나 박수를 비롯한 동물 소비자들은 그전의 다른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동물들은 의식적으로 식물재배 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농작물이 야생 식물에서 친하던 초기에 무의식적인 단계에서는 의도적으로 재배 되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들이 자기 열매를 먹고 퍼뜨린 오류인 하는 방향으로 진화 있을 뿐이다 흑돼지의 장소처럼 인간의 배설 장소도 최초의 무의식적 품종개량 자들의 실험장이 어떤 것이다
그 중에 어떤 연구소에 종자가 떨어지든 가네 그 종자는 먹을 수 있는 식물 중에서도 단지 몇 몇 개 채에서 나온 것이 때가 많았다 야생 딸기를 따로 다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게는 어느 특정한 딸기 나 딸기 덤불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최초의 농민들이 의도적으로 씨앗을 뿌리지 시작했어요 때도 자연이 자기들이 선택한 식물 개체에서 나온 씨앗을 뿌리고 되었다 큰 딸기 의 씨앗을 심 어서 자라면 그 덤불에서 더 큰 딸기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유전법칙을 모르면서도 말이다
*야생 식물 중에서도 한 푼 중에서도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을 인간이 다 왔고 그거 맛있어 보이는 개체의 씨앗이 심어지면서*
p181) 돌연변이 종자의 유용성과 자연선택 야생 신문에 농작물로 진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은 열매 크기 쓴맛 과육에 양 기름 섬유의 길이 등 초기 농경민들이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특성이었다. 야생식물 중에서 그와같이 바람직한 특징들을 유난히 많이 갖추고 있는 개체를 수학함으로써 고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식물들을 널리 퍼트려 작물화의 기반을 닦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밖에도 열매를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하고 선택하지 못했던 중요한 변화가 적어도 내일까지는 있었다이 경우에는 열매를 다른 사람들이 어떤 보이지 않는 이유 때문에 다른 식물은 수학 하지 못하고 어쩌다가 구할 수 있는 식물들 마늘수확함으로써 또는 식물의 작용하는 선택 조건들을 변경 시킴으로써 변화를 야기시켰다 그 같은 첫 번째 변화는 종자를 퍼뜨리기 위한 그것들만에 야생 상태에서의 기법에 영향을 미쳤다 많은 식물들이 종자를 분산시키기 위한 (그리하여 인간들이 효율적으로 종자를 채취하게 못 하게 하는) 특수 기법을 갖고 있다 그런 기법을 갖추지 못한 돌연변이 종자 들 많이 수확되어 농작물에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 분명한 얘는 완두콩으로 그 씨앗 (우리가 먹는 완두콩)은 꼬투리 속에 들어 있다 야생 완두콩이 봐라 하려면 우선 그 꼬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 완두콩은 꼬투리를 터뜨려 콩을 땅바닥으로 소다 보내는 유전자를 진화시켰다 야생상태에서 라면 돌연변이 완두콩은 부모 식물의 달린 꽃들이 속에 갇힌 채로 죽어 버리고 꼬투리가 터지는 개체 많이 그 유전자를 후손의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인간이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은 꼬투리가 터지지 않고 그대로 달려있는 개최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인간이 먹기 위해서 야생 완두콩을 집으로 가져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곧바로 유전자 하나의 그 돌연변이가 선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터지지 않는 돌연변이가 선택된 어떤 식물은 완두콩 이후에도 렌즈콩 아마 양귀비 등이 있다 야생 밀과보리의 정체는 터지는 꼬투리 속에 들어 있지 않은 대신 줄기 꼭대기에서 잘 하고 그 줄기가 흩어지면서 종자가 땅에 떨어져 바란다 그런데 윤자 하나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줄기가 터지지 못한다 야생상태에서 라면 종자가 공중에 매달린채로 있어서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지 못한 구로 2돌연변이는 그 식물에게 치명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돌연변이 존재는 줄기의 그대로부터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간편하게 수확하여 집으로 가져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수확한 돌연변이 종자들을 심었을때 그 후손 중에서 돌연변이 종자는 농경민들이 다시 수확하여 뿌릴 수 있었지만 정상적인 종자들은 땅에 떨어져서 수확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농경민들은 자연선택에 방향을 180도 돌려놓았다 종전에는 성공적이었던 유연제가 갑자기 치명적인 되었고 반대로 치명적이었던 돌연변이가 성공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만년도 더 진한 옛날에 그렇게 줄기가 터지지 않는 밀과보리를 무의식적으로 게장 했던 것은 모든 식물을 통틀어 최초로 인간에 의해 개량된 중요한 살이었던이 변화는 곧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농업이 시작된 전환점 이기도 했다

5. p212) 지역별 농경
그래서 비옥한초승달지대에서는 토종 야생식물 만장 물로 해도 충분히 농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 야생식물을 작물화 시킨 농작물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8 정의창 시장 물중에서 2종은 비옥한초승달지대 위에 있는 자생하지 않았으므로 다른 지역에서는 아예 작물화 될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적당한 야생 포유류와 식물이 있었기 때문에 비옥한초승달지대 사람들은 집약적인 식량생산을 위한 우수하고 균형잡힌 생물 조합을 금방 구성할 수 있었다 그 조합에 포함된 3종의 공유는 탄수화물이 주된 공급 원이었고 사정에 콩류에는 각각 20에서 25%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었으며 4종의 가축은 단백질에 주된 공급원이 되었고 부족한 부분은 미래의 풍부한 단백질 함량으로 보관했다 아마는 섬유화 기름 (아마인유라고 하는데 아마씨는 40%가 기름이다)위 공부머리 되었다 그리고 동물의 가축화와 식량생산이 시작되고 나서 몇 천 년이 지난 후 동물은 첫 털 쟁기질 운송 등을 위해서 또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비옥한초승달지대에서 초기 농경민들은 농작물과 가축은 인간의 여러 가지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의류 견인력 운송 등을 두루 충족시키게 되었다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 식량생산이 일찍 시작되게 했던 마지막 이정은 지중해 서부 영화를 포함하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이 지역에서는 수렵채집 생활의 경쟁력이 약 했으리라는 점이란 서남아시아 있는 큰 강이 별로 없고 해안선도로 짧아서 수산자원이 비교적 빈약했다 고기를 얻기 위해 많이 상냥했던 중요한 포유류를 중에 하나가 과제였다 애들은 원래 큰 무리를 이루고 살았지만 음료가 늘어나면서 남획되어 수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곳 식량생산 용 동식물들이 수렵채집 용동 식물보다 우울해졌다 또한 식량생산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공유의 기반을 둔 정주영 촌락들이 있었으므로 수렵채집민들은 쉽게 농업과 목축업 쪽으로 기울었다 비옥한초승달지대의 경우 수리업체 집에서 식량생산으로 회전하는 비교적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비씨 9천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 아직 농작물이나 가축을저녁 같이 못 하여 전적으로 야생 먹거리 왼손 했는데 pc6000 연경이 전에 일부 사이는 이미 농작물과 갖추게 거의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중앙아메리카에 상황은 강하게 대비된다이 지역에는 축구 할 수 있는 동물이 칠면조와 개인용 뿐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곡이 회장은 소양 염소 돼지 등 보다 훨씬 적었고 중앙아메리카에 주식인 옥수수는 이미 설명했듯이 과정이 까다로워 아마도 발전 속도가 느려 쓸 것이다 그래서 중앙아메리카에 가축화 작문하는 bc3500년경에 비로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연도는 아직도 매우 불확실하다) 최초로 가축과 작물을 개발한 이 사람들은 여전히 유량 생활을 하던 수렵채집민 드렸고 정착 촌락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BC 1500년경에 이르러서였다

이상으로 비옥한초승달지대에서 식량생산이 일찍 시작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이점들을 살펴보았지만 그곳 사람들에게 과연 남다른 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논할 필요조차 없었다

p573) 아프리카 농작물에 마지막에서 두번째 조합은 그 야생 조상이 5판 기후에서 아프리카에서 재생하던 식물들이다 그중에서 아프리카 배를 비롯한 일부는 거의 그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었고 아프리카 마리를 비롯한 일부는 사랑이 남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 두루 퍼졌다 기름 야자와 콜라열매 두 가지는 다른대륙 그래도 전파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옛날부터 카페인이 들어있는 콜라 나무열매를 씹어서 마약처럼 이용했으며 코카콜라사의 음료수가 미국인들로부터 결국 전 세계 사람들이 매혹시킨 것은 훨씬 나중에 일이다 거기에도 원래는 그 열매의 추출물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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